혼자 > 좋은시모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좋은시모음

혼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닉슝이 작성일99-11-23 14:21 조회477회 댓글0건

본문


혼자가 된다는건 구차하기 그지 없다
혼자 밥 먹어야 되고
혼자 영화보러 가야하며
혼자 동물원에 가야한다
혼자 영화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해
혼자 따져봐야 한다
혼자 김치국물을 흘리면서
혼자 자기 옷에 묻은 김치국물 자국에 대해
혼자 흉을 봐야 한다
혼자 동물원에 가면
동물원의 동물들 보다 오히려
내 자신이 동물이 되어버린 것 같아
타조라던가 원숭이에게 줄 먹이 조차
내가 다 먹고 나온다
그럴땐 정말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가 뒤바뀐 것 같다
동물들은 무리지어 다니고 혼자인 나를 오히려
무리지어 다니는 동물들이 바라보고 있을때
내가 동물원이고 그들이 관람객이다
나는 그래서 그 이후로 절대 혼자 다니지 아니 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절대로
혼자 밥 먹지 않고
혼자 영화보러가지 않으며
혼자 동물원에 가지 아니 한다
그 이후로 나는 줄곧
밥 먹지 아니 하며
단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아니 한다
혹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반드시 시나리오를 구해서만 읽고
동물들은 동물원에 가지 않고
골방에 쳐박혀 머릿 속으로만 그려본다
코리끼는 다리가 넷
염소는 뿔이 두개
하마는 벌린 입이 2미터 <p>
혼자가 된다는 건 정말로 자기 혼자서도
무엇하나 해 볼 수 없는 &lt;자기부재&gt;에
다름 아니다
내가 죽고난 후라도 그 혼자인 나는
나의 장례식에 찾아와서
혼자 울고 갈 것이다
이제 너무 지겹다
이제 너무 배가 고프고
이제 너무 영화가 보고 싶으며
이제 너무 동물원에 가고 싶다
아아 어쩌다가 나는
내게서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
혼자가 된 것일까
그러다가 혼자 문득 내가 나를
부둥켜 안고 걸레 짜듯이
눈물 흘리고 있다
봄비 촉촉히 내리는 3월
비록 나는 혼자 울고 있지만
나는 그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 눈물의 뜨듯함에 대하여
눈물에 담긴 온기에 대하여
불에라도 데인듯 소스라치며
아직도 나에게 물컹거리며 짚이는

너희들이 아직 온전하게
나를 보살피고 있구나
나는 아직 혼자가 아니구나
내게 아직 건재한 그 뜨거운
그리움들을 닦아내면서
잠자리에 눕는다
내일은 누구가를 불러내 기필코
밥을 같이 먹거나
영화 보러가거나
동물원에 가보아야 겠다
하마의 입이 정말 2미터씩이나 찢어지는지
줄자를 준비해서 직접 가 재보아야 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