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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모음

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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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닉슝이 작성일99-11-19 10:35 조회4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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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lt;그날 이야기&gt;&gt;<p>춘천에서 버스를 갈아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산허리를 몇 번이나 감고 여기저기 뿌려진 눈 탓으로 희끗희끗해진 도
로를 버스는 덜덜거리며 달렸다.
화천 다목리에 도착해 면회신청을 하고 돌아서니 그제야 어깨 근육이
풀리는 듯하다. 오늘 묵을 여관이나 민박집을 찾아볼까 싶었지만 어느 순
간 동생이 &#039;짠!&#039; 하고 나타날 것 같아 그냥 있기로 했다.
걸어둔 팻말처럼 군인회관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따스함을
건네주는 건 자판기 커피의 온기뿐.
획일적인 군복 때문인지 이 사람도, 멀리 들어서는 저 사람도 모두 동
생 같아 보였다. 순간, 그을린 얼굴에 횐 이빨을 씩 드러내며 뛰어오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웃음을 한입 베어 무는데 동생의 찢어진 군복바지 틈새로 기어 들
어가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발견차고 말았다. 애꿎은 엄지와 새끼손톱만
마주 튕기며 일 미터 팔십을 훌쩍 넘는 키 큰 동생의 손을 잡고 묵을 곳을
찾으러 마을로 내려왔다. 우리는 가족과 여러 친척 안부를 이야기하고,
동생이 부대에서 가장 발이 커 소대장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300mm 군
화를 주었단 말에 깔깔거렸다.
아무리 커도 그렇지. 공룡신발도 아니고, 참.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얼굴은 점차 굳어져
갔다. 방이 없었다.
은행 온라인으로 방값을 미리 부쳐주고 전화로 미리 예약하면 된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대부분 처음 겪는 일들은 칼질이 서툰 새댁
마냥 뭔가 어설프다. 잘 도착했다고 대구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넣고
난 뒤 슈퍼마켓 앞에 서서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뿌연 입김만 내보내고<p>있는데 웬 아저씨가 우리끼리 하는 얘기를 들었나 보다. 자신이 묵는 민
박집은 마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두어 개의 방이 남아있는
것 같더라고 일러주었다. 그 아가씨를 따라가니 대문 바로 앞이긴 했지만
다행히 조그만 방 하나가 비워져 있었다. 연거푸 고맙다고 건네던 인사와
함께 방에 대한 걱정은 뜨끈뜨끈한 방구들 속으로 녹아져 버리고 없었다.
배낭에 챙겨온 자질구레한 먹을 것들을 쏟아낸 것 중에 동생이 제일
먼저 집어든 것은 토마토케첩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걸 못 먹어서였겠
지만 그걸 통째로 치약 짜듯이 입안에다 쭉쭉 짜 넣는 모습을 보니 서글
픔이 앞섰다.
그날 밤, 차갑고 싸한 뒷산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와 창문을 획 문지
르고 가는 겨울 바람은 그 좁은 방의 훈훈함을 한층 더 보담아 주었다.
나 혼자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터라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보
다 내가 면회를 가는 것이 거리 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훨씬 수월했
다. 능청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철없던 동생에게서 이따금씩 느껴
지는 어른스러움이 나를 낯설게 만들기도 했다. 군대에서의 짠밥 묻어나
는 표준말 같지 않은 이상한 말투와 손등.종아리 곳곳에 긁힌 상처를 보
면서 녀석에게 애처로움까지 느꼈다.
머리맡에 슬리퍼 끄는 소리와 코펠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벌써 아침이
묻어난다. 대충 아침밥을 챙겨먹은 후 동생에게는 좀 더 자라고 한 나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찢겨진 군복바지를 수선하러 나섰다 세탁소는 물론,
간단한 계급장을 달아주거나 잔바느질을 해주는 문방구 같은 구멍가게를
무려 여섯 군데나 들렀다.
그러나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어제 부탁 받은 세탁물과 수선 옷들
이 밀렸기 때문에 도저히 해줄 수 없다는 거였다 나는 칸 줄로 찢겨진
거라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주면 된다
는 소리까지 하면서 옆에 붙어서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려 든다면 &#039;순서&#039;라는 게 필요 없는 거라며 차갑게 딱 자른다. 순서와 줄
을 따지는 군대 분위기가 여기까지 스며든 것인가.
마을 가장 위쪽에 자리한 가게 아저씨는 지금 맡겨두면 그나마 저녁
라도 찾아가게끔 해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오후에 서울로 돌아가야
고 동생은 팬티 차림으로 그 방에서 나을 수도 없는데, 누가 그 수선
바지를 찾아 전해준단 말인가 안 될 일이었다.
왜 나는 체육복 한 벌, 아니 바지 하나만이라도 더 챙겨올 생각을 못
것일까. 사람들 말마따나 그놈의 순서도 중요하지만 나는 내 동생 바지에
바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누비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급하고 중요했다. 가
게의 낡은 미닫이문 곁에 나는 한 손엔 바지, 다른 한 손으로는 입 언저
리를 꽈 누르고 서 있었다.
하늘이 너무 투명했다. 이 낯선 곳에서 동생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루를 차이로 대구에 있던 애가 갑자기
경기도 외딴 시골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뭔가.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039;인간&#039;이 된다고들 쉽게 말하지만 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군대에서 이 모든 걸 겪어야하나 싶었다 .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찔찔 배어드는 눈물 때문에 점점이
검게 변하는 군복의 카키색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었다. 이번 일엔 더<p>이상 나의 힘이 닿지 않았을 뿐더러 &#039;순서&#039;라는 벽은 너무나 두터웠고,<p>더구나 몇 배의 돈을 주고 부탁해도 통하지 않는 여기는 바로 군부대 마<p>을이었다.
차가운 눈바람이 볼을 더 벌겋게 상기시켰다. 등뒤에서 문 여는 소리
가 나더니 저녁에라도 해 주겠다던 그 아저씨가 어디 바지 다시 한번 보자
고 하셨다. 어설프게 내미는 그것을 받아보고는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나는 왠지 따라 들어갈 수 없었고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몰라 입술만
달싹거렸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아저씨가 바지 안 찾아가고 거기 계속 서 있을거
냐고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나는 고
맙다는 말을 더듬더듬 입밖으로 내놓았다. 하늘이 너무 투명해서 이런 일
이 생기는 걸까.
깨끗하게 누빈 바지를 차곡차곡 개어 가슴에 안고 민박집에 돌아오니
아침 먹은 지 얼마 됐다고 동생은 그새 컵라면 국물을 훌쩍이며 마시고
있었다.
내가 건네주는 바지를 보며 동생은 한마디 한다.
"어, 기술적으로 잘 누볐네 누나, 이거 어디서 했냐?짜 식들, 거기 가
서 수선하라고 해야지."
우리는 점심으로 고기 몇 점 구워 먹고 터미널로 향했다.
내가 다리던 직장이 광고회사였던 터라 1주일 내내 쉴 틈도 없었고 주
말엔 이 멀리까지 오고 보니 몸이 천근만근이라는 어른들 말씀이 정말 실
감났다.
버스표를 사는 동안 동생은 이리저리 친구들한테 전화한다고 분주히
손가락을 놀렸다. 그런 동생을 생각 없이 쳐다본다 학교생활이 그리운가
보다. 콧방귀 펑펑 뀌던 교수님들 안부까지 챙기는 걸 보니.
"누나, 나...제대하면 잘할게 ."
"뭔 잘할건데?"
괜히 한번 톡 쏘아본다.
눈 때문에 30분 연착된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잡으니 어느새 동생이
뛰어올라와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옆자리에 던져주고 간다. 내가 쓰라고
준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샀나 보다. 초콜릿, 캔커피 , 소보로빵.
차창너머로 면회 온 이들을 떠나보내는 군인들은 하나 둘씩 출발하려
는 버스 옆으로 달라붙기 시작하는데 유독 동생만 자꾸 멀리 뒤로 발걸음
치고 있었다. 깊이 눌러쓴 모자 아래로 흐르는 그 눈물을, 난 보지 않아
도 알 수 있었다. 떠나보낸 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겠지.
남자 형제를 둔, 그것도 군에 입대한 경우 가족들이 누릴 수 있는 이
&#039;면회&#039;라는 장면이 가져다주는, 아리하게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실체는
바로 사랑이 란 것이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난 이내 아득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까만 비닐봉
지를 움켜쥔 채....<p>                                              좋은글2-삶과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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