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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잇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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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닉스^^ 작성일01-05-03 21:25 조회9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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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은 바라지도 않거니와 또 알지도 못한다.
날로 변하는 세상에서 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누군가에게 충절을 맹세하고 죽을 때까지 그 한사람만을 사랑하겠다는 것이 과연 실행 가능한 일인가.
사랑을 의지의 행위로 보는 키에르케고르의 견해는 살펴보지 않고는 그러한 물음에 대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사랑이란 느낌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결론지었다.
말하자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해석해놓은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을 예수의 명령으로 보았다.
그도 처음에는 그런 사실에 무척 놀라워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으며, 우리 역시 우리의 느낌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사랑하라고 말했는가.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사랑은 분명 어떤 감정 이상의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옳은 말이다.
사랑이란 느낌이라기보다는 선택일 것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가지를 합한 것이리라.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해볼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굳은 의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어떤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어떤 것을 의지적으로 실행한다.
간혹 부드러움과 기쁨, 애정표현이 눈에 띠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평소엔 느낌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랑을 찾아가지 않는 한, 둘의 사랑은 감정 이상의 일관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일관성은 부부의 건강한 의지로 이루어진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십오년 동안이나 새로운 배우자를 찾아다녔다.
이미 스물한살에 사라 오스틴과 관계를 갖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그의 가족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의 아내였다.
훗날 그녀는 남편을 설득하여 디즈레일리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의 여성편력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파티 장에서 그 파티를 준비한 의사의 아내인 클라라 볼튼을 새 정부로 삼아 정계에 뛰어드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년도 채 안되어 그녀를 버린 뒤, 아이가 넷이나 딸린 헨리에타 스타키스와의 염문설에 휘말렸다.

그러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디즈레일리는 열두 살 연상의 부유한 미망인 메리 앤 에반스에게 구혼했다.
그녀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가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믿지 않았다.
실제로 그도 처음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가 파크레인에 화려한 저택을 가지고 있고, 일년에 사천 파운드의 수입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혼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아름답지도 명석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언제나 유행에 뒤떨어진 옷을 입었으며,
정치가의 아내가 취해야 할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무지 오래 갈 것 같지 않았던 이들 부부는 영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 쌍이 되었다.
디즈레일리는 편안히 편안히 쉴 수 있고 메리 앤의 사랑이 넘쳐흐를 수 있는 가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매일 저녁 그는 하원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는 즉시 귀가하여 아내에게 그날의 뉴스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어리석고 침착지 못한 모습을 보여도 결코 비난하지도 않고 진실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가 비콘필드 경이 되었을 때 그는 집으로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다.

\"사랑하는 메리 앤, 이제 당신은 비콘필드 부인이 되었소.\"

그리고 삼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 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인생은 오랜 세월 행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친절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데일 카네기에 따르면, 그녀는 아내로서 가장 중요한, 남자 다루는 기술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신뢰하였으며 언제나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고 칭송하며 자신의 여생을 보냈다.
어떻게 그런 결과를 낳게 되었는가.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삼십 년 동안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한번도 그녀에게 싫증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메리 앤이 디즈레일리의 과거도 모르는 채 살았던 어리석은 여자라고 비웃고 있다.
그들은 가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당신 돈을 보고 결혼했소.\"

\"알아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와 다시 결혼한다면, 그때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할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면 그는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의 인생은 아내의 사랑에 힘입어 크게 성공했던 것이다.
두 번이나 영국의 수상을 지냈으며, 위대한 정치가로서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다.
그들의 사랑은 결코 순간적인 느낌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생 속에 이루어졌으며, 서로에게 충실함으로써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C.S루이스는 사랑은 의지의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지 확신을 갖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치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하자마자, 우리의 커다란 신비를 발견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 당신은 곧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루이스는 미움에 있어서도 그 과정은 똑 같다고 말하고 있다.

\"만인 정말로 싫은 사람이 있어서 그를 해치고 싶어한다면,
당신은 그가 더욱 더 싫어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그의 장점을 떠올리려 한다면, 당신 스스로도 그를 덜 싫어하게 되었음을 느낄 것이다.\"

사랑을 열정적이고 황홀한 기쁨이라고 보는 사람은,
사랑의 느낌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은 헌신과 의지의 실행 같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항의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느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지만,
희생은 두사람에게 닥쳐오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당신의 배우자에게 진실하겠다고 맹세하는 것과,
요즈음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라\'든가, \'당신의 느낌에 따르라\',
또는 \'현재를 살아라\'는 구호는 판이하게 다르다.
요즘의 전반적인 사회심리는 영원한 관계의 토대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속박 받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총체로서의 자아를 주장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기보다는 자아를 실현하는 가운데
인생의 참의미를 추구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전반적인 사회심리에 대응하는 방법은 \'유동적\'이 되는 것뿐이니,
만일 그와의 관계가 부진하다면 과감히 그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영원하면서도 독점적인 관계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변화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당히 살아나간다면 결국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도 사랑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느낌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일흔 여섯 살 된 노부인이 내 사무실을 찾아와서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비참해졌는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좋든 싫든 나는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와의 결혼생활이 이렇게 악화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몇 년 전에 직장에서 은퇴했는데,
그 이후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노쇠현상을 흔히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데, 그는 하룻밤 사이에 변해버렸던 것이다.
침착하고 온순하던 성격이 욕설을 퍼붓고 담배를 피워대며,
술고래가 되어 하루종일 그녀를 쫓아다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사무실 밖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를 도울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묻자, 남편을 여러 의사들에게 데려갔었지만,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그를 공공시설에 집어넣는 것이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는 이 절망적인 남자에 대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멀리 떼어놓든지, 아니면 그와 이혼하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그녀는 몹시 흥분하였다.
그 순간 이 노부인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좋은지에 대해 충고를 듣고자 찾아온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또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병든 남편에게 좀더 많은 사랑을 베풀고자 했다.
내 사무실을 찾아온 이유는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자 함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듯이 일어서서 사무실을 나갔다.

그녀가 떠난 후에, 나는 한동안 그대로 앉은 채 이 남자 저 남자를 편력하는 여자들에 비해
그녀의 사랑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실 지금의 남편에게선 이렇다 할 매력을 찾아볼 수 없을 텐데도,
그녀의 넘쳐흐르는 애정은 마지막 남은 힘처럼 느껴졌다.
그녀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수십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남편,
그랬던 그가 지금은 병든 데다 성격마저 까다롭게 변하여 항상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처음 그를 사랑했을 때처럼 여전히 살뜰하게 보살펴주고 있다.

지금까지 말해왔던 우리는 깊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랑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의 고통까지도 선택했다는 말이 된다.
즉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를 높이 평가하고 받드는 것도 그가 고통에 친숙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을 미덕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그 역시 쾌락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며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쾌락보다는 다른 이들의 행복을 더 중히 여김으로써 고난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영원하고 헌신적인 사랑 같은 극적인 효과 없이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수 있다.
칼 로저스의 아내 헬렌을 생각해보자.

로저스는 사십대로 접어들면서 거의 일 년 동안이나 아무런 이유 없이 성욕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아내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들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아내 헬렌은 내가 곧 정상을 되찾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내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침착하고도 변함없는 사랑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처방보다도 그녀의 사랑이 최대의 처방이었습니다.\"

로저스의 말처럼 그녀의 정성은 한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비로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다.
자신의 쾌락추구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은 따뜻한 사랑이 넘쳐흐르는 가정을 꾸밀 수가 없다.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결혼 생활을 잘 꾸려나가려면 고통을 참아내야 할 때가 많은 법이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아내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

남편에게서 매력을 찾지 못하는 데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까지 해서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남편 친구에게 마음이 쏠리고 있음을 느낀다면,
그때 그녀는 늘 충실해야 한다는 남편과의 결혼서약에 대해 매우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삼년 더 중고차를 몰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신혼 초의 환희가 내내 지속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만일 그 환희에 의존한다면, 그 결혼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결혼서약에 근거한다면, 또한 가족을 믿고 함께 생활해나간다면,
그 기쁨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나이 들어 은퇴한 정치가인 해리 트루만은 결코 감상적인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 베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주일 학교에서 만난 국민학교 오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습니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다가 졸업했으며, 인생 길을 함께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내 눈에는 지금도 푸른 눈과 금발머리를 가진 예전의 소녀처럼 보입니다.\"

부부가 되려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서로를 사랑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방종한 여자와 이기적인 남자에게는 진부한 구닥다리라고 생각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방종한 여자들과 일만 아는 남자들도 병들 때가 있다.
언젠가는 그들도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서로에게 헌신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몇 해전의 어느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전화 벨이 울렸다. 친한 친구인 데이비드릭이었다.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면서 병원에 입원한 그의 아내가 밤새도록 나를 찾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아침에 병원에 들러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의 성격으로 보건대, 그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면 분명 위급한 상황이 일어났으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두 사람을 알고 지낸 이후로 그의 아내 베티는 거의 사 년 동안 암으로 고통받으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나는 그들의 다정한 모습은 여러 번 보아왔다.
이십 팔 년 전, 대학 캠퍼스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그는 핸섬한 남학생들을 물리치고 그녀와 결혼했었다.
그런 만큼 그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시 혼수 상태에 빠졌다.
데이비드는 여전히 그녀의 침대 곁에 의자를 가까이 끌어다놓고, 하루종일 함께 머물면서 그녀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병실에 있던 두 사람을 생각하였다.
그들의 사랑이 순간적인 감정을 넘어선 얼마나 깊은 것이었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였다. 병원에서 보았던 그는 이틀 전 출근할 때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나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당할 때, 그 힘을 크게 발휘하는 것을 볼 적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들을 지탱시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밤샘을 하면서까지 그녀를 간호하도록 만들 수 있었는가?
전쟁포로가 된 남편 아내가 몇 년이고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든 힘은 무엇인가?
수년에 걸쳐 매주일 마다 형무소에 갇힌 남편을 면회 가는 아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분명 쾌락적인 사랑 이상의 어떤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감정적인 사랑 이상의 어떤 것이다. 그것은 인내와 성실, 희생이다.
고통을 견디어내도록 하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희생이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의 결혼 서약을 지키는 것이다.
당신에게 쾌락적인 기쁨이 없다고 해서 당신의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만일 내게 열정적인 사랑과 희생적인 사랑,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만일 내게도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죽어 가는 여자의 침대 곁에 앉아 있었던 그런 연인이 되기를 원한다.



- A. L 맥기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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